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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교육/일기

2016학년도 수업 일기

2016학년도 2학기 중간 즈음에 (논문 작성중이신 선배님의 부탁으로) 일년을 돌이켜보며 작성했던 일기. 지금 읽어보니 1년 사이에 생각이 바뀐 부분들도 있다. 하루 하루는 별 차이가 없었는데 1년이 모이니까 꽤 다르구나. 매일 열심히 살아야 하나보다(요즘 엄청 게으른데..)
                                                                       
 3월에는 두렵기도하고 설렜다. 처음부터 과고에서 수업을 한다는 게 기쁘기도 했지만 그럴만한 능력이 있을까 싶은 맘에 걱정이 되었다. 

 이 맘때에 가장 걱정했던건 학생들에게 존중 받을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굳이 학생들을 억압하거나 강압하고 무서운 모습을 보여주지 않더라도 학생들이 교사를 진심으로 존중한다면 수업시간에 교사를 잘 따르리라 믿고있다. 그러니까 권위적인 교사가 아니라 권위있는 교사가 되고 싶은 맘이다. 그리고 교사의 권위는 학생들에 대한 존중과 교사의 전문성으로부터 나온다. 그런데 과고 애들은 똑똑한데다가 내가 지나치게 어려 만만하게 보일텐데 학생들로부터 존중받을 수 있을까 걱정이었다. 다행히 가끔은 아슬아슬했지만 지금까지 전반적으로 애들은 나에게 존중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 전반적으로 성공적이다. 하지말라고 해도 계속 형이라 부르는 애가 있는데 언제 한 번 정색하고 단호하게 혼내야하나, 날 만만하게 보는 건 아니고 친해지고 싶은 맘인 거 같긴 한데 이게 잘못 된 태도는 맞는가 무튼 고민이다. 

 수업관련 이야기는 길어질 것 같아 마지막으로 미룬다. 수행평가를 생각해보자. "ㅇㅇㅇ선생님. 그 동안 수학은 발표횟수나 과제물 제출로 수행을 했고 제출의지가 있는 흑생은 대부분 만점이 나오게끔... " 라는 말을 듣고 그냥 과제물로 하기로 했다. 근데 어차피 만점 줄거면 무슨 의미지? 음 점수에 연연하지 않아도 되니까 더 좋을 수도 있겠다. 애들이 아는 것에 비해 발표나 서술을 못하던데 서술 연습을 시켜야겠다 마음 먹었다. "못풀겠으면 쉬운것만 골라 풀어도 된다. 답만 맞아도 맞고 답이 틀려도 풀이 방향만 맞아도 된다. 그래도 자기 수준에 맞는 문제를 풀고 풀이과정을 자세히 서술해주면 꼼꼼히 피드백을 해주겠다. 시험 서술형 작성할 때에도 도움이 될거다."고 했고 원한대로 서술하는 능력이 꽤 향상된 학생들이 보인다. 그리고 기대하지 않았던 효과도 있는데, 수행평가에 코멘트를 달아주는 것이 학생과의 하나의 연결고리가 되었다. 수업시간에 못했던 질문을 쓰기도 하고 좋은 노래를 서로 추천해주기도 하고, 무튼 소통의 공간이 되어 나와 학생 간의 관계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분명하다. 별 것 아닌 말 몇마디 써주는 게 학생들 입장에서는 선생님이 나에게 주는 관심이라는 의미에서 크게 다가가는 것 같다. 한 명 한 명 답안에서 틀린 부분 아쉬운 부분을 찾아 고치고 학생들마다 "지난 번에 추천 해준 노래 좋았다." "다친 다리는 다 나았니?" 등등 멘트를 쓰는게 쉽지는 않지만, 이건 초임일 때 뿐 아니라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다.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이렇게 관심을 갖게 되고 또 잘 알게 되어 너무나 좋다. 

 평가인 시험에 대해.. 시험을 치는 입장이었는데 출제라니! 좋은 시험 문제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하지? 일단 수업시간에 열심히 듣고 질문이나 발표 많이하고 내가 만든 수업자료를 열심히 공부한 학생들이 점수가 잘 나와야한다. 하지만, 프린트를 열심히 달달 외운 학생보다는 수학적 능력이 뛰어난 학생이 점수가 잘 나와야한다. 또한 특정 문제집을 풀어보았거나 학원을 다녔던 학생들에게 유리해선 안된다. 해당 단원에서 가르치고자 하는 내용을 잘 반영해야한다. 이 정도가 절대 원칙이고... 아무리 못하는 학생이라도 수업을 들은 것만으로도 풀 수 있는 문제가 한 두문제는 있어야한다. 수업자료를 열심히 보았으면 풀 수 있는 살짝 변형된 문제들 위주로 출제를 하고 진짜로 수학을 잘하는 학생을 가릴 수 있게 수업자료 문제들을 두 세개 섞거나 어렵게 변형한 문제가 한 문제 정도 있어야한다. 계산을 복잡하게 해서 시간싸움을 하게 하면 안된다. 문제에서 힌트를 얻어 풀 수 있는 풀이가 없도록 해야한다. 보기를 대입해서 풀거나 보기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으면 안된다. 정답 1~5의 개수는 골고루. 서술형은 정말로 정확히 풀 줄 아는데 서술하기 힘든 풀이만 있는 문제를 내어선 안된다. 이 정도 고려해서 내는 것 같다. 

 시험 이후엔 각 문제의 출제의도나 무슨 문제를 변형한 것인지 출처를 학생들에게 알려준다. 그리고 정답률을 살펴보는데 이를 보면 학생들 중 많은 애들이 이 문제가 변형이 되어 저 문제가 된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 그걸 아는 애들이 대부분 수학공부를 잘 하는 애들인 것 같다. 이런걸 보는 눈을 기르려면 애들이 직접 문제를 변형해보아야할 것 같다. 그래야 그 문제에서 핵심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겠지.. 이번 학기엔 원하는 애들에 한해 수행평가에서 문제를 만들어 보도록 했는데 도움이 됐으려나, 시험을 쳐봐야 알 것 같다. 

 이번학기에 맡은 단원인 행렬과 일차변환은 다시는 맡고 싶지 않은 단원이다. 애들이 문제집을 구할 수 없어서 힘들다고 하고, 나 또한 수업준비가 힘들다. 행렬이나 일차변환 모두 그 내용이 너무 애매하게 교육과정에 들어 있다. 뭘 좀 하려고 하면 교육과정을 넘어가고, 교육과정 안에서 수업하면 너무 단조롭고 재미없고 기계적인 풀이가 가능하고 무튼 별로다. 내가 젤 최근에 선형대수를 배웠으니 나보고 행렬이랑 일차변환을 맡으래서 했는데, 정작 선형대수를 쓸 수가 없다. 교육과정을 벗어나 선형대수를 가르치기엔 내가 그리 선형대수를 잘 알지도 못하고 교육과정 넘어가는 내용을 가르치는 것 자체를 상당히 싫어하고 부담을 느낀다. 그래서 그냥 교육과정에 있는대로 쉽게 쉽게 하기로 했다. 이번 학기가 지나면 사실 행렬과 일차변환은 필요????가 없으니까, 다른 과목도 공부해야할 게 엄청 많은 애들이니 행렬이랑 일차변환은 좀 쉬어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도 내가 원하는 방향과 교육과정이 다르면 어떻게 해야할까 하는 고민이 남는다. 그런데 아직은 이를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고 지금의 내 능력을 넘어 가는 것 같다. 아직 현명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아..

 수업에 관하여. 처음 수업 준비를 할 때는... 개념 설명 부분이 제일 곤란했다. 진도가 급해서 한시간에 중단원 하나씩 개념 설명을 끝내야하는데 이런 시간속에서 학생이 뭔가 의미있는 활동을 할 수 있을까. 대부분 애들이 미리 공부해온 것을 설명해야하는가. 미리 공부 안한 학생을 위해 천천히 설명할 수 있는가. 같은 부서 수학 쌤에게 물어보니 교과서에 있는 정도만 간단히 확인하고 넘어 간다고 한다. 대부분 아는 내용을 확인만 하고 넘어가는 게 의미가 있을까? 하지만 나도 그렇게 수업을 했다. 일학기엔 비교적 집중해주었지만 이학기부터는 이미 아는 학생들의 따분한 모습, 모르는 학생의 포기한 모습이 좀 보인다. 

 수학을 배울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푸는 것이라 생각했다. (별다른 이윤 없었고 내 학생 경험을 바탕으로) 그래서인지 개념설명은 적당히 포기했고 양질의 문제를 제공하는데 집중했다. 가장 못하는 학생이 풀 수 있는 문제부터 가장 잘하는 학생이 한참 고민해야할 문제까지 난이도를 포함할 수 있게/배워야할 내용 요소가 골고루 들어가게/각각의 유형을 풀 수 있게/학원에서 접하지 않은 문제가 있게 등등을 고려했다. 양질의 문제를 확보하고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자부한다. 그리고 문제별로 하기 쉬운 실수나 생각해볼거리를 정리해두었다가 알려주었다.(조립제법 원리가 뭘까? a조건을 이용해서 b부등식을 증명할 때 b를 맞다고 가정하고 a를 이끌어내도 되는가?)

 요즘은 단순히 양질의 문제를 제공하는 것보다 학생들의 인지적 갈등을 일으킬수 있는 포인트가 개념설명이나 문제풀이에서 조금씩 보인다. 그리고 수업 진행에 약간씩 여유가 생김에 따라&국환이형이랑 이야기를 함에 따라 이 부분들에 대해 조금씩 학생들에게 역할을 주고 있다. 애들이 스스로 잘 해결할 때도 있지만 분명 잘 못해서 망하거나 너무 소란스러워져서 망할 때가 더 흔하긴하다. 그래도 일단 이미 다 알아서 혼자 문제 미리 풀거나/전혀 몰라서 포기하고 있는 애들도 참여하게 되었다. 내가 말하는 것 보단 친구나 자신이 말하는게 더 좋은 가 보다. 

 교생 때 지도 교사 쌤이 "쌤은 차분히 설명하는게 장점이고 지루한게 단점이다. 차분히 설명하면서도 재밌는 수업이 분명 가능하다. 그런 포인트를 찾아보아라."고 하셨는데, 대충 요즘 느끼는 답은 이거다. 요즘 애들이 좀더 수업을 재밌게 느끼고 있는 것 같은데. 기본적으로 애들 수준에 맞는 문제가 필요하고, 그리고 요즘 들어 느끼는 점은 학생들의 인지적 갈등을 유도하는 발문과+이를 학생들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하는 것이다. 애들이 스스로 문제를 만들어보고, 친구 발표의 장단점을 말하고 보완하고, 문득 문득 질문하고 친구의 질문을 같이 해결하고, 이런 활동을 스스로하는 것이 바로 "수학을 하는" 것이다. 수학시간에는 "수학을 해야"한다.  학생들이 스스로 "수학 활동"을 하는 능력을 길러주는 것이 바로 내가 해야할 일이다.